채륜과 살바도르 달리의 생애 업적 4가지
채륜
발명 연대기에서 채륜(蔡伦, 62년경~121년)의 이름을 찾기는 쉽지않다. 그러나 이 고대 중국 정부 관리가 완성한 것으로 알려진 발명품, 즉 종이는 확실히 세상을 변화시켰다. 종이가 생기기 전에 고대 부족들은 쉽게 부식되고 찢어지기 쉬운 파피루스나 동물 가죽으로 만든 희귀하고 값비싼 양피지에 의지했다. 값싸고 질긴 종이로는 훨씬 더 많은 기록을 보존할 수 있었고, 책 생산 비용이 현저히 낮아졌다. 종이 제작은 서서히 전 세계로 퍼져나갔고, 그로 인해 실질적인 문맹률이 낮아지면서 유럽의 르네상스에도 기여했다.
채륜의 생애와 종이의 발명
후난성 출신인 채륜은 한나라 화제의 환관이었다. (황제의 환관으로는 거세된 남자가 선호되었다. 아이를 가질 수 없기 때문에 정부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왕조를 건설하려고 시도할 가능성이 적을 것으로 간주되었기 때문이다.) 89년에 무기와 다른 기구를 제조하는 부서의 책임자가 된 채륜은 얼마 지나지 않아 저렴하고 믿을 만한 필기도구를 만들어야 할 필요성을깨달았다. 수년간의 실험 끝에 그는 105년에 자신이 발명한 것을 황제에게 공개했다. 그 전에 이미 존재했던 종이 제작 기구와 전통적인 방법을 차용했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그가 만든 형태가 인기를 얻어 전 세계에 보급되었다.
채륜의 말년
채륜이 생전에 영예를 얻긴 했지만 그 영광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105년에 황제가 사망하자 그의 조카였던 안제가 즉위해 선왕의 자문관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결국 채륜은 감옥에 투옥되기 직전, 121년에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살바도르 달리
살바도르 달리(1904년~1989년)는 정교하고 학문적인 기법을 초현실주의적 환상이라는 거친 일탈에 접목시켜 20세기 가장 도발적이고 가장 별난 미술을 만들어낸 화가이다.
달리의 출생과 예술적 성향
달리는 스페인 카탈로니아에서 태어났다. 1921년 마드리드의 산페르난도 미술 아카데미에 들어갔고, 그곳에서 시인 가르시아 로르카와 영화감독 루이스 브뉘엘을 만났다. 2년이 채 지나지 않아 달리는 아카데미에서 쫓겨났다. 학생들의 반항을 선동했고교사들이 자신의 작품을 평가할 만한 자격이 안 된다고 주장했기 때문이었다.
초현실주의와 작품
1929년 달리는 파리로 건너가 초현실주의 운동에 가담했다. 편집증에 내재된 창의적 잠재력에 흥미를 느껴 스스로 ‘편집증적 비평 방법’이라고 부르는 방법을 개발했다. 초현실주의 철학에 따르면 편집증은 다각적인 관점에서 사물을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이 있으므로 세상을 불안정하게 만드는 수단이 되었다. 달리는 자신에게서 편집증적 비평 상태를 유도함으로써 더욱 강력한 예술을 창조할 수 있다고 믿었다. 달리의 대표적인 작품은 뒤틀리고 기형적인 머리와 녹아 있는 회중시계들, 개미가 득실거리는 시계로 황량한 풍경을 묘사한 <기억의 지속>(1931년)이다. 이 기괴한 장면은 꿈의 세계 속시간의 왜곡을 암시한다.
1929년에는 루이스 브뉘엘의 초현실주의 영화 <안달루시아의 개>의 각본을 썼다. 같은 해, 아내가 될 갈라를 만났으며 그녀는 50여 년간 달리의 뮤즈가 되어주었다. 1930년 달리와 브뉘엘은 <황금시대>의 대본을 같이 작업하여 영화로 만들었다.
미국 활동과 명성
달리는 계속해서 대중들을 놀라게 했고 매료시켰다. 1936년에는 <타임> 표지 모델이 되었고, 1937년에는 제작되지는 않았지만 마르크스 형제를 위한 독특한 대본을 썼다. 1930년대 후반 달리는 우익 성향의 정치관과 상업적 성공을 열렬히 추구했기 때문에 초현실주의자들과 절교하게 되었다. 1940년 미국으로 건너가 월트 디즈니로부터 영화 <판타지아>의 만화를 그려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1940년에 첫 개봉된 이 작품에 달리가 참여했다는 사실은 2003년 수정 후 재개봉되어서야 대중들에게 알려졌다. 달리는 앨프리드 히치콕 감독의 고전 <스펠바운드>(1945년)에서 꿈 장면을 만드는 작업에도 참여했다. 또한 1950년대 인기 TV 프로그램 에 초대 손님으로두 번 출연하며 대중의 관심에 대한 갈망을 충족했다.
말년과 예술 유산
달리는 말년을 스페인에서 보냈다. 1984년 원인 불명의 화재로 심한 화상을 입었고, 모든 재산과 미술품을 스페인 국가 재산으로 남겨주고 5년 후 사망했다. 오늘날 상트 페테르부르크와 플로리다에 각각 한 곳, 스페인에 세 곳을 포함해 달리 전용 미술관들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