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수리를 누르면 설사를 하는 이유
정수리를 누르면 갑자기 화장실에 가고 싶어진다는 이야기가 예전부터 전해져 왔다. 정수리 부근에는 한의학에서 백회(百會)라고 부르는 혈자리가 있어 이런 속설과 연결되기도 한다.
하지만 현재까지 정수리를 누르는 것만으로 설사가 발생한다는 것을 뒷받침하는 확실한 의학적 근거는 없다. 특히 백회혈을 자극하면 척수를 통해 항문 괄약근이 직접 자극된다거나, 몸속의 ‘나쁜 피’가 빠져나가 혈류가 좋아지기 때문에 치질이나 설사에 효과가 있다는 식의 설명은 현대 의학의 관점에서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렵다.
장은 신경의 영향을 받는다
그렇다고 뇌와 장이 완전히 따로 움직이는 것은 아니다. 소화기관은 자율신경계와 여러 신경·호르몬 신호의 영향을 받으며, 스트레스나 긴장 같은 감정 상태가 장의 움직임과 배변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실제로 자율신경계에 문제가 생기면 설사나 변비 같은 소화기 증상이 나타날 수도 있다.
침이나 경혈 자극이 장 기능에 어떤 영향을 줄 수 있는지를 조사한 연구들도 있다. 일부 연구에서는 설사를 주된 증상으로 하는 과민성장증후군이나 기능성 설사에서 침 치료가 증상 개선에 도움이 될 가능성을 보고했지만, 연구의 질과 결과에 한계가 있어 확실한 결론을 내리기는 어렵다. 또한 여러 경혈을 함께 사용하는 경우가 많아 백회혈 하나만을 자극한 효과로 보기도 어렵다.
따라서 정수리를 눌렀더니 배가 움직이거나 화장실에 가고 싶어졌다면, 이를 특정 혈자리가 장을 직접 자극했기 때문이라고 단정하기보다는 우연히 장운동이 활발해졌거나 긴장·심리적 요인 등이 함께 작용했을 가능성을 생각하는 편이 타당하다.
실제로 설사는 감염, 음식이나 약물, 식품 불내증, 과민성장증후군 등 다양한 원인으로 발생한다. 단순히 머리의 특정 부위를 눌렀다는 이유만으로 설사가 생긴다고 보기는 어렵다.
결국 ‘정수리를 누르면 설사를 한다’는 이야기는 흥미로운 민간 속설로 볼 수 있지만, 백회혈을 누르면 반드시 장이 자극되어 설사가 발생한다는 것은 과학적으로 확인된 사실이 아니다. 장과 신경계가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는 사실과 특정 혈자리를 누르면 설사가 난다는 주장은 구분할 필요가 있다.

참고 자료: 미국 국립당뇨병·소화기·신장질환연구소(NIDDK), Symptoms & Causes of Diarrhea; NIDDK, Autonomic Neuropathy; 침 치료와 설사형 과민성장증후군 관련 체계적 문헌고찰.